독서리뷰

[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재학생 부문)] 공감, 우리 모두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 작성일2020/01/2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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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후기 공모전 장려상(재학생 부문)을 수상한 송부경 님의 독서후기 '공감, 우리 모두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 우리 모두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오, 나여! 오, 삶이여!/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들.../ 믿음 없는 자들의 끝없는 행렬에 대해/ 나 자신을 영원히 자책하는 나에 대해……공허하고 쓸모없는 남은 생에 대해/나를 얽어매는 그 남은 시간들에 대해/ 오, 나여! 반복되는 너무 슬픈 질문/ 이것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오, 나여, 오, 삶이여!// 답은 바로 이것/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 삶이 존재하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장엄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윌트 휘트먼 「오, 나여! 오, 삶이여!」 (류시화 옮김)

 

소위 우울증이라고 진단 받은 사람들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아플수록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런 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정혜신이 지적했듯이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개별성을 뭉개버리고 자신이 소외 되었다고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위의 시처럼 계속해서 자신과 삶에 대해 묻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자책하게 되고, 남은 생이 공허하고 쓸모없어 보인다. 나의 색은 희미해져 간다. 내가 그렇게 퇴색되어 갈 때, 나를 다시 소생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누군가가 내가 존재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내 존재를 알려 줄 수 있다는 것일까? 내가 이러한 상황에 있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네가 옳다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정혜신은 존재에게 관심을 주는 통로로서 공감을 말한다. 공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의 존재가 어떻길래 공감이 중요한 것일까? 우리 존재의 핵심은 바로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몸담고 있는 곳은 마음이다.

영화 <콘택트(1997)>에서 과학자와 신학자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학자는 증거가 계속 필요하다면서 증거, 증거를 외치지만, 그 모습을 본 신학자가 과학자에게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보라고 한다. 과학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서 조용히 수긍해 버린다. 정혜신은 심리치유를 위한 현장에서 전문가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질병의 관점에서 한 존재를 환자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그들은 신경증, 정신 질환 등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임상적, 학문적 틀 위에 세워진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존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껏 증거와 증명으로 쌓아올린 틀에 맞춘 치료를 하려고 했으니,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인 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요즘 어떤지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 될 수 있다. 눈으로 직접 본 적도, 만져 본 적도 없는 그 마음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우울함으로 인해 병원에 가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약물을 처방받는 것은 일시적 치유일 뿐이다. 진정한 치유는 당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마음이 어떠한지 지속적으로 묻는 것이다. 무엇을 묻느냐가 아니고 존재에게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다.

시들어가던 나의 존재는 네가 물었기 때문에 피어난다. 너의 존재 또한 내가 물었기 때문에 그 색깔이 짙어진다. 정혜신이 말하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한 사람이며,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 이러한 연결은 논리적이지 않아서 이상하지만, 적어도 마음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렇다고 한다.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우주라서 그런 것이다. 근사한 수식이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신비한 사실이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정혜신은 계속해서 누구든지 결정적인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치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공감을 마구 퍼붓는 것이다.

다시 휘트먼의 「오, 나여! 오, 삶이여!」의 후반부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서로에게 공감을 해주고, 그 공감을 통해서 내 존재가 회복되고, 내가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엄한 연극은 계속 되고, 그렇게 나 또한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디 나 뿐인가?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공감을 주었다. 너 또한 너의 존재가 회복되고,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엄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 시란 무엇인가? 그저 활자에 불과한 언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우리 모두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 존재도 아니었던 서로에게 공감을 통해서 의미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가 된 우리는 끝없이 이 우주를 공명할 것이다.